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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날짜 [ 2015년05월07일 08시19분 ]

지난 5월28일 "아버지는 스페인계 주한미군이며 나는 혼혈아"라고 밝힌 이유진. 그는 기자회견 내내 울먹이며 이렇게 말했다. "혼혈아라는 인식이 박히면 활동하는데 불편하다.
 

사람들이 "튀기"라 부를까 두렵다. 단일민족이란 이름으로 나를 비하하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순혈주의 신화가 살아있는 한국사회에서 혼혈아 고백은 동성애자들의 "커밍아웃"만큼이나 힘들다. 혼혈이라는 사실만으로 사회적 편견과 따돌림,구직실패로 이어진다. 국제화시대,그만큼 흔한 국제결혼의 뒷면엔 여전히 혼혈인 문제가 남아있다.

"혼혈인으로 한국에서 사는 것은 치욕이다. 나는 나처럼 생긴 아이가 태어날까봐 결혼하기 전부터 불임수술을 해버렸다." 40대 후반 혼혈인 배모씨는 한국인이란 자긍심을 잃은지 오래다. 그에겐 그를,그의 가정을 돌봐주는 정부는 어디에도 없었다.

"어릴때부터 또래와 섞일 수 없었던 난 이단자였다. 이유 없는 손가락질을 받을 때 내 곁엔 그 흔한 사회온정도 없었다." 그는 "혼혈인"이라는 낙인엔 "역사가 버린 사람"이란 꼬리표가 달려있다고 덧붙였다.

지난 99년 한국인 여성과 결혼해 현재 네 살배기 아들을 둔 30대 파키스탄인 W씨. 사랑해서 결혼한 아내와 가정을 꾸렸지만 자신의 희망이자 기쁨인 아들을 보면 걱정부터 앞선다. W씨 아들의 성은 엄마 성인 김씨를 따르고 있다.

귀화하지 않은 W씨가 성을 물려줄 수 없는 현행법 때문이다. 사정을 모르는 동네사람들은 엄마 성과 같은 아들을 두고 미혼모 자식으로 취급하기 일쑤다. 더욱이 아들이 유아원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는 것 같다는 부인의 귀띔엔 할 말을 잃었다. "생활에 쫓기다보니 아들에게 파키스탄 문화를 가르치지 못하는 것도 서러운데,한국말 밖에 모르는 얘가 생김새,피부색 다르다는 이유로 벌써부터 소외당하고 있으니…."

네식구의 가장인 40대 초반 혼혈인 손모씨. 그는 일용직 노동으로 가계를 꾸려가고 있다. 올해 중학교에 진학한 큰 애 밑으로 들어가는 돈이 만만찮아 고정적인 수입이 가능한 일자리를 찾아보고 있지만 그리 쉽지 않다. 사회전반의 구직난도 한 이유겠지만 혼혈인을 바라보는 고용주의 편견이 더 크게 작용한다. "열심히 하겠다. 일단 일을 해보면 알지 않느냐"고 달라붙어봤지만 회사쪽에선 썩 내키지 않는 눈치를 보였다.

한국사회의 혼혈인 출생은 한국전쟁과 미군주둔을 배경으로 시작됐다. 미군을 상대했던 기지촌 여성과 혼혈인. 비극적인 역사를 함축한 이 한쌍의 조합에서 한국사회 구성원들은 혼혈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만을 키워왔다.

지난 60년대 이래로 형성된 이같은 인식의 틀은 지금까지도 그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또한 최근 3D업종 기피현상으로 동남아시아 노동자가 크게 증가하면서 이들과 한국인 사이에서 태어난 "코시안(코리안+아시안) 혼혈아동" 또한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

국제가족한국총연합에 따르면 초기 혼혈인 1만여명 중 한국사회의 폐쇄성에 적응하지 못해 지난 82년 미국 이민법 개정과 더불어 5천여명이 미국으로 이민,현재는 5천여명의 혼혈인이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전북대 설동훈 교수는 "최근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한국사람이 일본,중국을 제외한 아시아권 출신 외국인과 결혼한 쌍이 2천700여건이었다. 10년 정도 지나면 코시안 수는 1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추산되고 혼혈아동도 기하급수적으로 늘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한다.

그리 낯설지 않게 만날 수 있는 혼혈인의 삶은 한마디로 고달픔이다. 학창시절부터 놀림감이 되는 바람에 일반학생에 비해 학업 중도탈락률이 높다. 펄벅재단이 2001년 혼혈아동 184명의 학업중도탈락률을 조사한 결과 초등학교 미진학 및 중퇴자가 9.4%,중학교 미진학 및 중퇴자가 17.5%로 나타났다.

사회에 진출해도 대우는 마찬가지. 펄벅재단 한국지부가 최근 기지촌 출신 혼혈인 67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혼혈성인 56%가 미취업에 가까웠고 33%는 단순노무직에 종사하고 있었다.

10명중 9명이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지 못한 셈. 이같은 경제적 궁핍을 반영이라도 하듯 주거형태는 조사대상자 69%가 월세였고 14%가 전세였다. 친척집에 얹혀 사는 가정도 2%나 됐다.

지난 78년부터 지난 98년까지 정부는 20년간 펄벅재단을 통해 생계비 및 학비를 혼혈인들에게 보조해 왔다. 그러나 지난 99년 공동모금회법이 제정되면서 한 기관에 3년이상 지원할 수 없다는 내부규정에 묶여 올해부터 펄벅재단에 대한 혼혈인 지원이 완전 끊긴 상태다. 더욱이 한국이 OECD 회원국이 되면서 미국 본부로부터의 후원금 지급도 중단됐다. 또한 혼혈인 대부분이 최종 사회안전망인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수급자임에도 불구,혼혈인 문제에 대한 실태조사나 정책적 접근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한미행정협정(SOFA)에도 혼혈인에 대한 책임과 의무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부양요구에 대한 각서"에서 독일여성과의 사이에 혼혈아동을 둔 미군이 아동의 양육비를 지불토록 권고한 "미국-독일 SOFA"와는 비할 바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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