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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날짜 [ 2015년05월07일 08시36분 ]

"제 이름은 배기철. 한국인입니다. 단지 피부색이 다를 뿐인데…, 사람들은 자신과 다르다고 합니다."
 

하얀 피부에 파란 눈을 가진 배기철 (51·공항교회 목사) 국제가족한국총연합회 회장은 까만 피부에 흑인 특유의 곱슬머리를 가진 안성자(53)씨와 한 가정을 이뤄 국제가족을 위해 일하고 있다. 국제가족은 혼혈인, 국제결혼 당사자와 가족, 귀국 해외동포, 귀화 외국인, 국내거주 외국인과 가족을 포함한다.

배 회장은 하나님을 만난 후, 고난이 힘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차별과 수모를 당해 봤기에 똑같은 고통 속에 살고 있는 국제가족들을 위해 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는 초등학교에 다닐 때까지는 얼굴이 하얗고, 예쁘게 생겼다며 오히려 귀여움을 받았다. 하지만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뭔가 이상했다. 학교 친구들과 얼굴이 딴판이었다. 하얀 얼굴은 햇볕에 그을리지도 않았고, 눈도 검은색이 아닌 파란색이었다. 길거리를 걸어갈 때마다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제야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혼혈아다.'

사춘기 시절 어머니로부터 출생 이야기를 들었다. 어머니는 김해에 있는 장씨 가문에 시집가서 아들과 딸을 낳아 잘 살고 있었다. 1956년, 장에 쌀을 팔러 나갔다가 이탈리아계 미국인으로 추정되는 유엔군으로 부터 몹쓸 짓을 당했다. 시댁에서는 난리가 났고, 이듬해 그가 태어났다. 어머니는 핏덩이를 등에 업은 채 딸아이의 손을 잡고 시댁에서 쫓겨났다. 전쟁 통에 축복받지 못하고 태어난 혼혈아들이 부모와 함께 사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들은 대부분 고아원으로 보내졌다. 하지만 그의 어머니는 자식을 결코 버리지 않았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76년부터 89년까지 밤무대 드럼 연주자로 살았다. 착실히 돈을 모았으면 남들만큼 살 수도 있었겠지만, 사업을 해보겠다고 한 것이 실수였다. 매니지먼트 사업도 해보고, 이벤트 사업도 해봤지만 모두 실패했다. 막노동판에서도 일하고, 전단지 모델도 하면서 근근이 살아갔다. 그렇게 그는 주저앉을 뻔했다. 그를 일으켜 세운 이는 40세에 만난 아내 안성자씨다.

"98년 당시 서울 문정동에 혼혈인협회 사무실이 있었는데, 아내가 사무실에 왔죠. 아내의 작고 귀여운 모습에 반했어요. 첫 데이트 장소는 교회였어요. 은 십자가 목걸이를 아내에게 걸어주며 하나님 다음으로 당신을 사랑하겠다고 고백했어요. 결혼식은 아직 못 올렸어요."

초등학교 시절부터 그의 외로움을 달랠 수 있는 곳은 교회였다. 흑인계 혼혈인으로 힘들게 살아온 아내 역시 잊고 있던 하나님을 다시 만나게 해준 배씨가 고마웠다. 두 사람은 인생의 고통을 밑거름 삼아 다른 이들을 돕는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이라고 생각했다. 2006년 차별 없는 세상을 꿈꾸는 그들의 소망을 담은 국제가족한국총연합회를 창립했다.

"50평생 한국에서 살아오면서 실감해온 차별과 냉대를 다음 세대에는 넘겨주고 싶지 않았어요. 현재 혼혈 가족 500여명이 가입되어 있고, 총 회원은 3000명 정도예요. 앞으로 연합회를 발전시켜서 복지센터도 만들고 싶어요. 6·25전쟁 때 참전한 연합군들의 피해자인 여성들과 그들로 인해 태어난 혼혈인을 위한 특별법이 마련되길 바랍니다."

그는 최근 두란노 아버지학교를 수료한 후 이름도 모른 채 원망만 했던 아버지를 용서했다. "아버지를 용서한다고 말하는 것이 그렇게 힘든 일인 줄 몰랐어요. 쉰이 넘은 나이에 아직도 아버지란 말을 들으면 눈물이 나니 어쩌지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체험하고 나서야 아버지를 용서할 수 있었어요."

사실 그에게 아버지는 평생용서 못할 대상이었다. 결코 '아버지'가 되고 싶지 않았다. 피부색이 다른 아이가 태어나, 자신처럼 차별받으며 살아갈 것을 생각하면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고통은 자신으로 끝내고 싶어 20대에 불임수술까지 받았다.

그는 예수님께서는 이 땅의 묶인 자, 소외된 자, 포로된 자에게 관심을 가지셨다며 지금도 인종적 차별이 있는 이 땅이 사마리아라고 말했다. "이방민족과 유대민족의 혼혈로 천대받았던 사마리아인에게 예수님께서는 직접 복음을 전해주셨습니다. 이곳에서부터 복음이 전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공항교회 혼혈인 목사 배기철은 "한국전쟁의 혼혈인으로 피해여성과 혼혈인들에게 무관심한 정부와 자치단체에 대한 서운함을 떨구지 못하고 있다. 예전에는 '혼혈인' 문제는 뜨거운 감자였지만, 지금은 국제결혼이 증가하고 다문화가족으로 수용하면서 많이 완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지병과 가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전란의 피해여성인 '우리의 어머니'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아쉽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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