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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성스님 이야기
등록날짜 [ 2015년12월12일 07시36분 ]



경허(鏡虛)스님은 한국 근현대 불교를 개창했다는 대선사입니다. 1849년 전주에서 태어났고, 9세 때, 경기도 과천에 있는 청계사로 출가하였습니다. 속가의 이름은 송동욱(東旭)이고, 아버지는 송두옥(斗玉)이다. 법호는 경허(鏡虛), 법명은 성우(惺牛)입니다.

한동안 제자들을 가르치다가, 돌연 환속하여 박난주(朴蘭州)라고 개명하였고, 서당의 훈장이 되어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함경도 갑산(甲山) 웅이방(熊耳坊) 도하동(道下洞)에서 1912년 4월 25일 새벽에 임종게를 남긴 뒤 입적하였습니다. 나이 64세, 법랍 56세이다. 저서에는 《경허집》이 있습니다.

경허의 수제자로 흔히 '삼월(三月)'로 불리는 혜월(慧月), 수월(水月)ㆍ만공(滿空) 선사가 있습니다. 경허는 '만공은 복이 많아 대중을 많이 거느릴 테고, 정진력은 수월을 능가할 자가 없고, 지혜는 혜월을 당할 자가 없다'고 했다. 삼월인 제자들도 모두 깨달아 부처가 되었다. 이들 역시 근현대 한국 불교계를 대표하는 선승들입니다.

현재, '북송담 남진제'의 두 큰스님의 경우에, 송담스님은 경허(75대)-만공(76대)-전강(77대)-송담(78대)의 계보이고, 진제스님은 경허(75대)-혜월(76대)-운봉(77대)-향곡(78대)-진제(79대)의 계보입니다.


 

경허스님은 술 먹고 고기도 예사로 먹는 무애행을 한 것으로 유명하였습니다. 그와 관련한 일화도 제법 전해지고 있다. 오죽하면 수덕사를 사람들은 경허선사 때문에 술독사라고 불렀다고도 합니다.

경허선사와 만공스님 이 두 분의 선문답에 가까운 대화들도 많이 알려져 남아 있는데 제일 재밌는 것은 옛날 교과서에서 소개된 ‘아직도 업고 있느냐?’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두 스님이 얕은 하천을 건너게 되었는데 아름다운 미인 하나가 물을 못 건너고 그 개울가에서 안절부절 못하는 걸 보고 경허선사가 등을 내밀며 업히게 하고 스님으로서 이런 행동을 하는 만공스님이 아무리 스승이지만 못마땅했나 봅니다.

그래서 개울을 건넌 후 줄곧 못마땅한 얼굴을 하자 경허선사가 무슨 일이냐고 묻고 만공스님은 작정한 듯이

“불제자로서 방금 그 행동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화를 내니 경허선사가 대답하시었다.

"나는 그 여인을 개울 건너편에 내려 두고 왔는데 너는 아직도 업고 있느냐?"

선문답이란 게 무엇인지 잘 알려주는 그런 말씀이라 인상에 남았는데 그저 두 스님이라고 소개된 내용이 사실 경허선사와 만공스님의 수많은 일화 중에 하나라고 합니다.

여하튼 경허선사는 개심사, 수덕사를 비롯해 충청도와 전국의 수많은 사찰들과 그 부속암자들을 돌아다니며 무애행을 했고 만공스님도  그 경허선사를 따라 젊은 날에 많은 길을 걸으며 만행을 했다가 말년에는 덕숭총림의 방장으로서 수덕사에 머물고 잠시 마곡사의 주지를 할 때를 제외하곤 줄곧 수덕사와 지금의 덕숭산의 만공탑이 있는 자리에 암자를 두고 머무셨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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