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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주 칼럼(사회안전행복운동연합 이사장)
등록날짜 [ 2019년06월25일 18시19분 ]



그 뒤 유성룡은 이조 좌랑
, 병조 좌랑 등의 벼슬을 역임하게 되었는데, 그 무렵 평소에 존경하던 퇴계 이황이 세상을 떠나고 또 종조부마저 돌아가시자, 겹치는 슬픔을 이겨내지 못해 헌신짝 버리듯 벼슬을 내팽개치고 고향인 안동으로 달려갔다.

 

고향에 계신 어머니를 뵙자 유성룡은 지금까지 자신이 나랏일에 쫓겨 어머니 봉양을 게을리 한 게 죄스러워, 다시는 한양 땅에 올라가지 않으리라 결심하였다.

'제아무리 글을 많이 읽어도 어머니께 할 도리를 다하지 못하면 개, 돼지와 무엇이 다를 바 있겠는가. 효성 없는 학문은 눈뜬장님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선조는 유성룡을 어머니 곁에 오래 있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에게 정 3품 벼슬인 홍문관 부제학을 내렸으니 곧 상경하라는 전갈이 왔다. 다시 마음에도 없는 벼슬길에 오른 유성룡은, 서재에 고향의산수도를 걸어 놓고 그곳에 계신 어머니를 생각하곤 했다.

'아버지 나를 낳으시고 어머니 나를 기르시니, 아 애달프다 어버이시여, 그 은혜 갚고자 하나 하늘같이 끝이 없거늘.' 유성룡은 한번 어머니의 모습을 머리에 떠올리면 그 날 밤은 한 잠도 이루지 못하고 하얗게 새우기가 일쑤였다. 그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고 날이면 날마다 뜬눈으로 지새다보니, 유성룡의 낯빛은 이제 누가 봐도 몹시 앓는 사람의 그것이었다.

어느 날 임금이 유성룡과 더불어 나랏일을 상의하다가 그의 얼굴색이 초라한 것을 보고 이유를 물어보니 유성룡은 몸만 한양 땅에 있을 뿐이지 마음은 줄곧 고향 어머니 곁에 가 있습니다. 어머니 봉양하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나 몸이 떨어져 있으니, 그저 밤잠을 설칠 뿐입니다."라고 아뢰었다. 임금은 유성룡의 효성에 눈시울을 적시며 지그시 눈을 감았다.

참된 신하는 동시에 효도하는 아들이어야 한다는 것을 내가 잠깐 잊고 있었구나.” 탄식을 하며 임금은 유성룡에게 고향과 가까운 상주 목사로 부임하여 소원대로 어머니를 봉양하도록 배려하였다.


유성룡이 벼슬길에 오른 지
10, 그 동안 그는 줄곧 중앙에만 있었지 지방 근무를 하게 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그의 나이 39세 때의 일이다. 사내 나이 서른아홉이라면 한창 벼슬 욕심을 낼 때가 아니던가. 그럴수록 지방보다는 중앙에 있어야 모든 일이 유리하게 돌아가게 마련인데, 유성룡은 아무 미련 없이 효도의 길을 택했던 것이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어버이에 대한 효는 나라에 대한 충보다 작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사사로운 것에 대한 애착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유성룡에게 충과 효 중에서 어느 것이 크냐고 묻는다면 그는 둘 다 크다고 대답했을지 모른다.

 

훗날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유성룡이 몸으로 보여준, 그의 나라에 대한 헌신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어머니를 봉양하듯이 나라를 위했으며 나라를 위하듯이 어머니를 받들어 모셨다. 결국 그의 자세를 통해 우리는 불효하는 충신이 있을 수 없으며, 반역하는 효자 볼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선조 34년인 1601,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유성룡은 서미동이라는 곳에 작은 초가집을 지어놓고 혼자 쓸쓸히 지냈는데, 그즈음 그는 끼니를 이어나갈 양식조차 어려웠다.

1607, 몸이 쇠약해진 유성룡이 자리에 눕자 선조는 왕과 왕비의 치료를 도맡는 내의를 내려 보내 그의 병을 돌보도록 했으나, 그런 임금의 정성도 보람 없이 그는 66세인 수명을 다하고 말았다. 임금은 아끼던 유성룡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닷새 동안이나 나랏일을 쉬며 슬퍼하였다.

"짐은 그의 학식과 충성에 대해서 누누이 감탄하는 바이지만, 그의 효성을 더욱 잊을 수 없노라. 짐은 그를 통해 효를 다하는 자는 충도 다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노라. 또 효, 그것은 곧 슬기인 것을 알게 되었노라."는 선조의 말은 효와 충이 다르지 않음을 말하는 것이고 이것은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진리인 것이다.

 

부모의 마음은 그저 자식이 잘 된다면 어떠한 희생도 감내하겠노라며, 고난한 삶을 밝히지 않는다. 요즘의 세태를 보면 유성룡의 효는 고전에 불과한 것일까?

 

인과응보(因果應報)를 알면서도 바로 자신에게 닥쳐 올 일을 가늠하지 못하는 몽매함은 부모에 효를 다하지 않고 자식에게 효를 하라 이름은 모순인 것이다. 자녀는 부모를 보고 배우며 실천한다는 말을 새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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