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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주 칼럼(사회안전행복운동연합 이사장)
등록날짜 [ 2015년04월21일 12시59분 ]


복지를 위한 복지가 아니고 단지 ‘공약’을 이행한다는 ‘복지’는 하지 말아야 한다. ‘증세없는 복지는 없다’가 정답이다. 복지정책을 펴 나가려면 재원 마련이 필요한데, 재원은 즉 세금이다. 박근혜 정부는 증세없는 복지를 주장하고 증세를 하지 않고도 다른 방법으로 재원을 마련한다는 발상 자체도 어불성설이다.

65세 이상의 노인들에게 일률적으로 20만원씩 지급한다는 발상은 노인의 표를 의식한 선심성 ‘공약’이 아니던가. 우리의 복지정책은 가히 사상누각이다. 처음부터 ‘복지’는 국민적 공감대가 우선되어야 하는 것이지 정치지도자들의 선심이 아닌 것이다.

늘어나는 복지비용을 어디서 끌어올 것인가가 핵심이다. 당연히 부자와 대기업으로부터 일 것이다. 야당이 주장하는 부자감세 철회요구는 단편만 보는 근시안적인 것이다. 이들에게 세(稅) 부담을 늘리면 경제가 침체된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데도 정부정책에 발목잡기를 하고 있음이다.

스웨덴 중산층들의 세금에 대한 인식은 놀랍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 중소기업 기능공으로 일한다는 한 40대 가장은 월급의 40%를 세금으로 낸다고 했다. “속상하지 않으냐” 물으니 “노(No)”라는 단호한 답이 돌아왔다. ‘내가 낸 세금만큼 (복지 혜택으로) 돌려받는다.’는 것과 ‘공무원들이 내 세금을 떼어먹지 않는다.’는 믿음이 강했다. 누구를 만나도 비슷한 얘기를 한다.

스웨덴의 평균 소득세율은 31%로 국민 대부분이 버는 돈의 30%를 세금으로 낸다. 서비스 및 생필품을 살 때 내는 부가가치세도 25%(한국은 10%)나 된다. 이런데도 “세금을 더 내야 한다면 기꺼이 내겠다.”고 말한다. 스웨덴 국민들은 세금으로 운영되는 복지제도가 삶의 질을 보장해 주고 질병이나 실업 등 갑자기 닥칠 위기 때 기댈 수 있는 마지막 방파제라는 믿음이 강하다.

한국 사회 ‘증세’ 논쟁을 보고 있자니 답답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세금을 단순히 복지 재원이나 예산 확보를 위한 도구로만 여기는 공무원들에게 화가 난다. 아무리 조세 교과서에 나오는 말이라 해도 국민을 거위로, 세금을 깃털로 생각하는 건 국민세금으로 월급 받는 공복(公僕)의 자세가 아니다.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이들이나 그런 발상이 가능할 것이다. 세금은 국민 개개인의 피와 땀의 산물이다. 그래서 ‘혈세(血稅)’다.

국민은 복지는 공짜라고 생각해서 ‘증세’에 반대하는 게 아니라 공무원들이 증세를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증세 없이 복지 없다’는 걸 모르는 국민이 있나. 그런데도 증세가 아니라 우기니 기가 막혀 대꾸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는 세금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지 오래다. 미국에서 탈세는 가장 중한 범죄이다. 선진국 대부분이 그렇다. 소득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수준에 맞게 세금을 내야 한다. 그만큼 국세청이 무섭고, 정부가 세금을 공평하게 거둔다는 사회적 믿음이 있다. 우리는 국세청장이 세금 깎아 준다고 뇌물 받아 쇠고랑 찬 모습이 신문 1면에 등장하는 사회 아닌가. ‘제대로 세금 내는 사람은 바보’라는 생각이 팽배한데 누가 선뜻 ‘증세’에 찬성하겠는가. 더구나 아무 설명도 없이 말이다.

억대 연봉을 받는다는 다른 40대 샐러리맨은 “소득 상위 20%가 내는 세금이 전체 세금의 80%다. 돈 많이 버는 사람이 세금도 많이 내야 하지만 고액 납세자에 대한 존중이 없다. 세금으로 가난한 사람들 돕겠다는 것! 좋다. 하지만 지금도 곳곳에서 국민 돈이 줄줄 새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의 중산층은 치솟는 물가와 사교육비를 감당하느라 노후대비는 꿈도 못 꾸는 ‘적자 인생’이 많은데 다짜고짜 ‘증세’라니 내상(內傷)이 깊을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복지의 롤 모델로 꼽히는 스웨덴 덴마크 네덜란드 등은 모두 노사정 대타협을 통해 복지 재원을 마련했다. 하루아침에 이뤄진 건 아니다. 수십 년간 토론과 대화를 하는 지난한 과정을 거쳤다.

스웨덴은 복지사회를 이루기 위해 그들이 기울인 노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20세기 초반 스웨덴은 걸핏하면 파업이 일어나 ‘파업과 보이콧, 폐업의 땅’이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1931년 총파업 때는 군(軍)이 시위대에 발포해 노동자들이 사망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사회적 위기감이 퍼졌다. ‘함께 망하기보다 같이 사는 길을 택하자!’ 정치권에서는 좌우연정(1936∼1939년)이 시작됐고 의회에서는 밤마다 끝장 토론이 이어졌다. 결국 노조는 파업을 자제하고 사측은 해고를 자제하는 살트셰바덴 협약(1938년)을 맺었다.

이후 스웨덴 노동쟁의 건수는 세계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다. 2차 대전 와중에도 승승장구했으나 1950년대에 들어서면서 또 다른 위기에 부닥친다. 이번엔 노노(勞勞) 갈등이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에 임금 격차가 커지면서 부자 노동자와 가난한 노동자의 갈등이 극에 달했다.

스웨덴은 다시 격랑에 휩쓸렸지만 다시 한 번 1951년 노동자단체와 경영자단체 간에 대타협을 이뤄낸다. 대기업은 임금 인상을 억제하고 중소기업은 임금을 높여 격차를 줄이고, 정규직이건 비정규직이건 같은 일을 하면 임금도 같게 하는 이른바 ‘노노(勞勞)연대 임금’ 협약(렌-메이드네르 협약)이었다.

이 협약은 성장과 복지재원의 동력이 됐다. 대기업은 인건비를 줄여 생긴 여유 자금을 공장 증설과 연구개발에 투자했고 높아진 임금을 감당하지 못한, 경쟁력 떨어지는 중소기업은 퇴출되는 자연스러운 구조조정이 이뤄지면서 경제체질이 강화됐다. 경제성장으로 과실이 많아진 대기업들은 1970년대 후반 직원 한 명당 임금의 31%에 해당하는 액수를 무조건 정부에 내는 ‘피고용세’ 정책에 합의하면서 복지의 새로운 재원을 추가했다.

한국의 실정은 어떠한가. 봉급생활자는 복지 재원을 위한 봉이나 마찬가지다. 기업에 대해선 국세청을 앞세운 세무조사로 재원을 마련하려는 행정편의주의가 판친다. 복지의 개념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없다 보니 현대자동차 노조에서 보듯 정규직들은 비정규직이 저임금에 허덕이건 말건 파업을 불사한다. 정규직이라 하더라도 노후 사회적 안전망이 부실하니 은퇴 후 생활비가 없으면 나락으로 떨어진다는 불안이 커 모든 것을 임금으로 충당하려 한다. 이대로 가다가는 경제민주화도, 복지도 물 건너간다.

스웨덴 상생정치의 결정적 배경엔 이 나라 영웅인 타게 에를란데르 사민당 총재가 있다. 그는 총리 재임기간(1946∼1969) 동안 매주 목요일을 노조와 재계가 만나는 날로 정하고 꾸준히 대화를 주선해 상생정치의 초석을 다졌다. 노사정 대타협을 성사시켜 국민적 동의를 얻지 못하는 한 박근혜 정부의 복지정책 성공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박근혜 정부는 복지정책을 전면 재검토하여 불합리한 요소는 과감히 버리고 재원누출을 철저하게 감시해야 한다. 대다수 국민에게 65세 이상의 노인이라는 틀에 얽매이지 말라. 기초생활수급자의 생활향상에 보탬을 주는 것이 급선무 일 것이다. ‘내가 낸 세금은 향후 내가 경제능력을 상실하였을 때 안전보호망이 된다는 신뢰를 심어주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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