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회원가입
2019년06월17일mon
 
티커뉴스
OFF
뉴스홈 > 저널 >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쪽지신고하기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기사스크랩 이메일문의 프린트하기
등록날짜 [ 2016년09월21일 13시31분 ]

송파구 세 모녀의 죽음’ 이후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을 극단적인 선택으로 내모는 부실한 복지정책과 사회부조제도가 도마에 오르고 있다. 특히 정부가 해야 할 일을 가난한 부양 의무자에게 떠넘기는 ‘부양의무제’는 대표적인 독소 조항이다.

 

[부양의무제]란 수급 대상자의 부모나 자녀에게 재산이 있거나 일할 능력이 있으면 기초생활수급자 대상에서 탈락시키는 제도다.

 

'세 모녀의 죽음'을 두고 복지 제도를 잘 몰라서 기초생활수급자, 비상생활지원금 신청을 안 해서 문제인 것처럼 왜곡하고 있다.

 

지난 4일 박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세 모녀를 언급하면서 “이분들이 기초수급자 신청을 했거나 관할 구청이나 주민센터에서 상황을 알았더라면 정부의 긴급 복지지원 제도를 통해 여러 지원을 받았을 텐데 그러지 못해 정말 안타깝고 마음이 아프다”며 “우리나라 복지여건이 아직 충분하지는 않지만 있는 복지제도도 이렇게 국민이 몰라서 이용하지 못한다면 사실상 없는 제도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전형적인 왜곡이다. 현행 '부양의무제'에 따르면, 송파의 세 모녀가 기초생활수급을 신청했더라도 수급자 인정이 안 됐을 것이다. 가장이던 어머니가 예순한 살, 두 딸은 삼 십 대이니 일을 할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 아닌가. 설령 큰 딸이 장애 등급 판정을 받았더라도 두 딸은 어머니 부양의무자이고, 어머니는 두 딸의 부양의무자가 된다. 당뇨나 척추질환 같은 질병은 노동 능력이 없는 질병이지만 장애등급이 안 나와 사실상 ‘부양의무자’로 남는다.

 

현행 제도 아래서는 기초생활수급자가 되려면 부양가족이 전혀 없는 고아, 독신이거나 적어도 장애등급 4등급 이상이어야 한다. 결국 기초생활수급을 받을 수 있으려면 월세 단칸방에 장애 등급이 있거나 자식이 없이 홀로 늙어가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부양의무제의 허점은 없는가? 일례로 아들이 시각장애인이고 홀어머니인 경우 노동능력이 없다하여 수급자에 해당된다, 그러나 내면을 들여다보면 아들은 안마시술소를 운영하며 생활이 풍족한 편인데도 ‘기초생활수급자’인 것이고, 반대로 이혼을 하고 홀몸으로 사는 노인네는 ‘가족관계부’에 자녀가 존재함으로 ‘기초생활수급자’에서 제외되어 길거리에서 파지를 주워 라면으로 끼니를 떼우는 경우도 있다.

 

이런데도 정부는 ‘부양의무제’를 고집할 건가? 또한 부양할 직계가족이 있다하여도 행방을 모르거나 취업을 하지 못해 생활고에 시달려도 오로지 노동능력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탈락’시키는 모순은 언제 고쳐질 것인가?

 

부양의무자에게 부양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든가, 아니면 취업을 알선하거나 창업할 수 있는 자금을 지원해 주든가 하는 지원 대책은 있었는가? 반면 부양의무자가 부양의무를 거부하거나 나태하고 있을 때는 정부가 강제하여 부양토록 하고 있는가를 묻고 싶다.

 

기초생활수급 탈락자 중 최대 30% 가량이 [부양의무제]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2010년 현재 부양의무제 때문에 기초생활수급 대상에서 제외된 ‘비수급 빈곤층’은 117만명에 이른다. '부양의무제'는 사회의 책임을 가족에게 전가하려는 술수에 불과하다. 폐지해야 마땅하다.

 

지난 대선 때 박근혜 후보 역시 장애등급제 폐지하고 부양의무자 기준을 대폭 완화해 기초생활보장제도 사각지대를 없애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물론 대통령이 되고 나선 장애등급제 폐지는 ‘조금 완화’로, 부양의무제는 부양의무자 기준이 아닌 ‘기초법 자체’를 폐지하겠다며 왜곡하고 있다. 그러면서 원인을 '국민이 몰라서 이용하지 못한' 탓이라고 매도하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3년 안에 1인당 국민소득을 2만5000달러에서 3만4162달러로, 고용률을 64.4%에서 70%로 늘린다는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의 장밋빛 발표가 아니라 지금 당장 긴급대책이 필요하다. '부양의무제' 폐지는 물론이요, 우선 당장 추가경정예산이라도 편성해 사각지대에 놓인 절망의 삶을 구제해야 하지 않겠는가.

 

국회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룰라 대통령의 말처럼 가난한 이들을 돕는 것이 ‘비용’으로만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국익을 위해 ‘비용’이 아닌 분명한 ‘투자’로 각인되어지길 바란다.

올려 0 내려 0
장선희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무통장입금 정보입력 입금자명    입금예정일자
(입금하실 입금자명 + 입금예정일자를 입력하세요)
[관련뉴스]
- 관련뉴스가 없습니다.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기사스크랩 이메일문의 프린트하기
[김명주 칼럼] 행복하기로 마음먹은 만큼 행복하다. (2017-04-25 13:47:37)
[김명주 칼럼] 더하면 커지고 빼면 작아진다. (2016-07-21 13:17:39)
해양경찰, 국제 해양오염방제 ...
제7회 항공문학상 17일부터 공...
제2회 경찰대학 치안대학원 학...
한국목재재활용협회 “바이오매...
SK, 미국서 ‘SK글로벌 포럼’ ...
창원감계중학교, 굿프랜드 ‘희...
삼성전자, ‘더 월 럭셔리’ 출...
현재접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