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회원가입
2019년06월17일mon
 
티커뉴스
OFF
뉴스홈 > 저널 >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쪽지신고하기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기사스크랩 이메일문의 프린트하기
해피코리아뉴스 편집장/칼럼니스트 김종철
등록날짜 [ 2015년04월25일 13시46분 ]

일본에서는 섣달 그믐날이 되면 우동 집들은 일 년 중 가장 바쁘다. 북해정의 한 우동 집 역시 분주히 하루를 보내고 가게 문 앞의 옥호 막(가게이름이 쓰인 막)을 거둘까 하고 있던 참에 출입문이 열리고 두 명의 사내아이를 데리고 한 여자가 들어온다.
 

허름한 옷차림에 여자는 우동 세 그릇이 아닌 한 그릇만을 시키며 어려운 사정을 예기하게 되고 이 말을 들은 주인은 우동 한 덩어리와 반을 더 넣어 손님이 눈치 채지 못하게 삶아 내어진다. 세모자는 우동 한 그릇을 가운데 두고 맛있게 먹은 후 우동 값 150엔을 지불하고 간다.

다시 신년을 맞이한 북해정은 바쁘게 한해를 보내고 연말을 맞이한다. 10시를 막 넘긴 시간 다시 가게를 닫으려 할 때 두 아이를 데리고 한 여자가 들어오게 되는데 주인은 여자의 옷차림을 보고 일 년 전 섣달 그믐날의 마지막 손님임을 알아본다.

여자는 다시 우동 한 그릇을 시키고 주인은 작년과 같은 테이블로 안내한다. 세모자는 우동을 먹고 역시 우동 값 150엔을 지불하고 가게를 나선다.

그 다음해의 섣달 그믐날밤은 여느 해보다 장사가 번성하였다. 10시를 조금 넘긴 시간 주인은 메뉴 표를 뒤집어 200엔으로 오른 우동 값을 150엔으로 바꾸고 세모자가 앉았던 테이블에 ´예약석´이라는 팻말을 놓아둔다.

가게에 손님들의 발길이 끊기자 기다렸다는 듯이 세모자가 들어온다. 형은 중학생 교복을 입고 동생은 형이 입었던 옷을 입고 있으나 여자는 여전히 예전에 입었던 허름한 반코트 차림 그대로 가게를 들어선다.

이번에는 우동을 이 인분 시킨다. 이윽고 세모자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일으켜 보험료로 지불하지 못한 나머지 돈을 갚느라 힘들었던 일 동생 쥰이가 학교에서 쓴 작문이 뽑혀 전국 콩쿠르에 출품되어 형이 수업 참관일에 참관했던 일들을 얘기하며 우동을 먹은 후 우동 값 300엔을 지불하고 가게를 나간다.

다시 일 년이지나 북해정에 주인들은 세모자를 기다리지만 나타나지 않고 그 다음해에도, 그 다음해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북해정은 장사가 번창하여 내부수리를 하지만 세모자가 않았던 테이블 만은 그대로 둔다. 새 테이블들 속에 낡은 테이블을 의아해 하는 손님들에게 주인은 우동 한 그릇 얘기를 해주게 되고 그 얘기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아주 유명해진다.

수년의 세월이 흐른 어느 섣달 그믐날밤 이번 해에도 세모자가 앉았던 테이블은 빈 채로 신년을 맞이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같은 거리의 상점사람들은 북해정에 모이게 된다. 나름대로의 이야기꽃을 피우며 번잡함이 절정에 달했을 때 가게 문이 열리고 정장차림의 두 청년이 들어온다.

출입문 쪽으로 향했던 시선들은 다시 시끄럽게 얘기꽃을 피우고 주인은 죄송하다며 자리가 없다고 말하려던 참에 화복(일본 옷)차림의 여인이 머리를 숙이며 들어와 두 청년 사이에 선다.

여인은 우동 3인분을 시킨다. 십 수 년 전 세모자를 생각하며 당황해하는 주인에게 청년하나가 말한다.

14년 전 모자 셋이서 우동 한 그릇을 시킨 사람인데 그때의 우동 한 그릇에 용기를 얻어 열심히 살고 있다고..

그 후 시가현으로 이사해서 의사국가시험에 합격해 교토의 대학병원에 의사로 근무하게 되었는데 내년부터는 삿뽀로의 병원에서 근무하게 되어 그 병원에 인사도 할 겸 아버님 묘에도 들를 겸해서 왔다고...

그리고 동생은 작문에서처럼 우동 집 주인은 되지 않았지만 고토의 은행에 다니고 있다고 그리고 동생과 상의해서 사치스러운 것을 계획했는데 그것이 삿뽀로의 북해정에 와서 우동 3인분을 시켜먹는 것이었다는 이야기를 하게 된다.

주인은 눈물을 흘리며 세모자가 예전에 앉았던 테이블로 안내를 하게 되고 가게 안에 다른 사람들은 모두들 감동하게 된다.

여기까지가 우동 한 그릇의 대략의 내용이다. 갈수록 각박해져가는 현대사회에서 세 사람이 들어와 우동 한 그릇을 시키는데도 이렇게 친절할 수 있을까? 또 그 친절에 감동하여 힘든 생활 속에서도 열심히 살아 반듯한 청년으로 성장하였다는 진부한 내용에 많은 이들의 내면의 눈물샘을 자극하게 한다.

우리 어른들이 겪었을 ‘보릿고개’의 배고픔과 생활의 고안품을 ‘그 때는 너무나 어려워 보리밥도 아닌 보리로 죽을 써먹기도 힘들었다.’는 말로 전해주면, 우리의 아이들은 ‘힘들게 왜 보리죽을 끓여 먹어요? 라면 끓여 먹으면 되지.’라는 말로 돌아오듯 상대에 대한 배려와 이해가 사라졌다.

우리의 삶이, 삭막한 세상이 우리 감성까지 무디게 만든다 해도 가슴 깊이 묻혀 있는 고운 감성은 언제나 영롱한 눈물로 스스로를 거듭나게 한다.

올려 0 내려 0
장선희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무통장입금 정보입력 입금자명    입금예정일자
(입금하실 입금자명 + 입금예정일자를 입력하세요)
[관련뉴스]
- 관련뉴스가 없습니다.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기사스크랩 이메일문의 프린트하기
[김명주 칼럼] 열정이 사라진 학교 (2018-09-25 13:28:15)
[김명주 칼럼] 우리의 일그러진 초상 (2015-04-21 13:15:34)
해양경찰, 국제 해양오염방제 ...
제7회 항공문학상 17일부터 공...
제2회 경찰대학 치안대학원 학...
한국목재재활용협회 “바이오매...
SK, 미국서 ‘SK글로벌 포럼’ ...
창원감계중학교, 굿프랜드 ‘희...
삼성전자, ‘더 월 럭셔리’ 출...
현재접속자